월간앙쥬

아이가 있는 풍경다섯 식구의 따뜻한 보금자리 카레나 삼형제의 한옥

동네 전체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북촌 한옥마을. 이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한옥에 그들만의 방식으로 즐기며 사는 한 가족이 있다. 이탈리아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귀여운 삼형제의 사랑 가득한 연둣빛 한옥에 다녀왔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북촌 한옥마을은 조선시대에 양반들이 모여 살던 동네로 지금까지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동네 전체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어느 한옥 초 인종을 누르자 엄마 신지혜 씨가 문을 열었다. 현대식으로 지은 아담한 한옥에는 시모네 카레나, 신지혜 부부와 페리체(10세), 포르테(8세), 페르모(3세) 다섯 식구가 산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살림살이가 늘어나면서 공간은 비좁아졌지만 부부의 행복은 훨씬 더 커졌다. 첫째 페리체 는 큰형으로서 동생들을 잘 챙기고, 둘째 포르테는 아빠 엄 마 말 잘 듣는 착실한 아들이다. 올해 한국 나이로 세 살이 된 페르모는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운 막둥이다. “신혼집으로 시작해 저희가 이 집에 산 지난 10여 년 동안 집 안 인테리어가 많이 바뀌었어요. 거실에는 커다란 테이 블 대신 아이들을 위한 매트리스가 들어서고, 부부의 아지트였던 다락룸은 아이들이 레고를 갖고 노는 장난감 방으로 변신했죠. 최근에는 주방을 넓히고 안전시설을 구축하는 공사도 진행했어요. 아이들이 성장에 맞춰 집도 변화하고 있죠.”

외국인 아빠가 손수 지은 한옥

시모네 씨 부부는 어떻게 한옥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걸까. 결혼을 약속하고 한국에서 신혼집을 알아보던 중 시모 네 씨의 눈에 유독 들어온 곳이 있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가르치던 그가 학생의 발표를 통해 북촌 한옥마을을 알게 된 것. 동네 전체가 한옥으로 이루어진 운치 있는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집을 고를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였다. 북악산과 기와지붕이 어우러진 풍경에 반해 단 번에 집을 계약하고 현대식 한옥을 짓는 공사를 시작했다. 집 안 어디서나 북촌의 경치를 볼 수 있게 벽 두 면에는 통 유리를 설치하고 뒤편에는 작은 마당을 마련했다. 작은 평 수를 보완하기 위해 땅을 파서 지하 공간도 만들었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스무 살 때까지 한옥에 살았기 때문에 장단점을 잘 알아요. 운치 있고 마당이 있는 점은 좋지만 겨울에는 무척 춥거든요. 결혼 전에는 아파트를 고집했지만 지금은 남편의 손때가 묻은 이 집을 제가 더 좋아해요.”

아이들의 상상력이 자라는 공간

한옥에 들어서면 모든 공간이 열린 독특한 구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건축 면적 28평(92.5㎡) 으로 작은 평수지만 공간을 분리하는 문이 없어 넓어 보인다. 시모네 씨는 헤어스타일이나 옷이 그 사 람의 개성을 표현하듯이 건축가는 자신의 집으로 개성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집을 지을 때 집 구조 자체가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워주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한국은 집구조가 대부분 방 3개, 화장 실 2개로 나눠지지만 삼형제네 집은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문 없이 연결되어 마음껏 드나들 수 있다. 집 안 전체가 아이들의 놀이터인 셈이다. 거실과 현관 사이, 지하실이 위치한 1층 바닥에 구멍 을 뚫고 강화유리를 설치해 집 안 어디서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수영장을 콘셉트로 한 아담한 거실은 바닥 전체에 하늘색 매트를 깔고 테두리에 벤치 소파를 배치했어요. 저희 가족은 이 공간을 리빙룸의 리빙(Living)과 풀(Pool)을 합쳐 ‘리빙풀’이라고 불러요. 아빠는 아이들과 몸놀이를 하고,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장난감을 갖고 노는 등 온 가족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죠. 바닥이 푹신해 막내 페르모가 마음껏 뛰어놀아도 안전한 공간이에요.” 거실 위에는 철제 구조물을 설치해 다락룸을 만들었다. 신혼 때에는 부부가 특별한 시간을 보내거나 짐을 보관했는데 지금은 가족의 공식 ‘레고방’이다. 장난감이 점점 많아져 정리가 힘들었는데 다락룸에 아이들 장난감을 모아놓으니 그럴듯한 장난감방이 됐다. 삼형제가 모두 블록놀이를 좋아해 대부분의 장난감이 레고 블록이다.

초록으로 생기를 불어넣은 인테리어

현대식으로 만들어 신발을 신고 방을 이동하는 등 한옥의 불편함은 없앴지만 식구가 늘어날수록 수납공간은 부족해졌다. 처음 설계시 공간 곳곳에 수납공간을 마련해두었는데도 10여 년을 살다 보니 효율적인 수납이 절실해졌다. 아이들 장난감은 레고방에 모아두고 넘쳐 나는 책은 집 안 곳곳에 보관 중이다. 침대 옆 벽면에 선반을 설치해 인테리어 소품처럼 책을 진열하거나, 자주 읽지 않는 책은 소파 아래와 같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었다. 집 안 여러 곳에 책을 두었더니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효과도 나타났다. 바닥의 지저분한 케이블선은 아빠가 직접 원목 케이스를 만들어 깔끔하게 숨겼다. “인테리어에 우리 가족의 개성을 담았어요. 한옥은 대부분 나무로 이 루어져 있으니 주방 가구는 나뭇잎 색깔인 초록색으로 하면 좋겠다 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 마음에 드는 밝은 연두색을 발견해 주방과 수납장 색깔을 통일하고, 집 안 곳곳에도 같은 색깔의 페인트를 칠해 포인트를 줬어요. 연두색은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집 안 전체에 생동 감을 주는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최근에는 거실 벽을 하늘색으로 칠 하고 매트 색깔을 푸른색으로 바꾸는 등 집 안에 하늘색을 더하는 중 이에요.”

아름답고 정겨운 한옥마을

북촌 한옥마을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보니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는 얼굴이다. 아파트는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도 인사하기가 멋쩍은데 이 동네 분위기는 확실히 다르다. 요즘은 날이 추워서 밖에 자주 나가지 못하지만 여름에는 이웃주민들과 길에서 한참 수다를 떨기도 한다. 사계절의 자연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데, 작년 여름에는 삼청공원 계곡에 자주 가서 물고기를 구경하고 민물게를 잡으며 놀았다. 운이 좋은 날이면 산책길을 걷다 다람쥐와 도롱 뇽도 만날 수도 있다. 의외로 이곳에는 삼형제 또래의 가족도 많다. 또래 아이들과 다 함께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놀고 친구 가족을 초대해 집에서 파티를 열기 도 한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어울리다 보니 이웃사촌이 따 로 없다. 부부는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따뜻한 분위기에서 보낼 수 있 는 것도 한옥마을의 장점 중 하나로 꼽는다. “도로에 차가 잘 다니지 않아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기 좋아요. 작 년 가을에는 자전거로 가족 나들이를 하기도 했어요. 자전거로 동네 를 한 바퀴 돌고 통인시장에서 떡볶이를 사 먹었는데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하더라고요. 아기자기한 동네에 살아서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라 감사할 따름입니다.”

프로젝트 [호제] 2018년 앙쥬 3월호
에디터 위현아(프리랜서) 포토그래퍼 이경환

의견쓰기타인비방, 모욕, 개인정보 노출, 상업광고, 홍보글 등은 공지없이 바로 삭제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TOP